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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이야기/생각할 이야기

수집벽

컵홀더 수집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재미삼아 시작한 '수도쿠' 게임이 있다. 

무료버전은 광고가 뜨고, 힌트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할애하여 광고를 봐야 얻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핑계로 유료결제 (CAD 6.00)까지 해서 게임을 즐겼다. 나름의 핑계로,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는 게임이기도 하고, 이마저도 머리굴리는 훈련을 안하면 굳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그리고 아내를 꼬드겨 함께 즐기도록 함으로써 모든 상황을 정당화 시켰다. 

 

이 게임이 중독성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집요하게 사람의 욕망을 잘 파악하고 있는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Daily 게임과 이벤트 게임이 제공되는데, Daily 게임을 한달동안 빠짐없이 수행하면 그 달의 트로피가 수여되고, 나의 트로피 보관함에서 매달 받은 트로피를 모아둘 수 있다. 이벤트 게임은 주어진 며칠간의 시간동안 20여개의 게임을 풀어가면서 동메달, 은메달,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인데, 그 게임들이 하나를 풀어야 그 다음 단계를 풀 수 있는 시스템이어서 금메달까지 따려면 하루에 적어도 7개의 게임을 해야만 한다. 이것 역시 마지막에 메달을 받아서 보관함에 보관할 수 있다. 게임 한 판을 끝내려면 짧게는 3분 이내에서 20분이 넘어서야 끝낼 수 있는 고난위도의 게임도 섞여있다. 몇 개의 게임을 연달아 하게 되면 한 시간 정도는 우습게 지나간다. 

 

재미있는 것은, 그 트로피와 메달이라는 것이, 그냥 트로피와 메달 모양으로 디자인된 아이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걸 많이 모으면 캐쉬를 주는 것도 아니고,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고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봐 주는 것도 아니며, 이걸 내 SNS에 자랑한다고 뭐가 더 나아지는 것조차 없는데, 그걸 굳이 끝까지 성실하게 수행해서 트로피와 메달을 모으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 경험이었다. 내가 게임을 지배하고 있는줄 착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닫는 즉시 게임을 지웠다. 

 

내가 지금 의미없는 트로피와 메달을 모아서 추구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그 만족은 찰나의 시간 동안만 누릴 수 있는, 먼지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찰나를 누리기 위해 인간으로써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살았는가.

 

어떤 사람은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애지중지하기도 하고, 턱없이 많은 돈을 들여 아무도 가치있다고 여기지 않는 것들을 사들이기도 한다. 박물관에 보관된 수많은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오래된 골동품들, 역사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장식품이 되버린 이제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물건들은 개인보다는 공공의 재산으로써 역사를 증거하는 물건으로써의 가치를 지닌다. 그런 물건이 개인의 소장품이 된다면, 역사를 증거하는 가치는 가려지게 되고, 개인의 만족을 추구한 허무한 결과물이 되고 만다. 

 

제 구실을 하는 물건들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는 구입당시의 동작 가능한 상태 그대로 보존된  오래된 컴퓨터를 모으는 수집가도 등장했다. 전자기기를 박스포장을 뜯지 않고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종된 기기들의 희소적 가치를 이 또한 역사를 증거하는 물건으로써의 가치를 더해 턱없이 높은 가격에 거래를 하기도 한다. 재테크의 한 방법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가치를 부여하는 다양한 방법 중의 하나임에 분명한 '수집'이라는 수단은,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을 때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그 가치를 부여한 사람이 나 혼자라면, 그리고 내가 그것에 집착을 한다면, 이것은 명백한 사단의 통로가 된다. 아무도 가치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을 애지중지하며 모으는 어떤 사람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 사람이 내가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