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려놓음
2017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셨다.
어차피 계약이 2월에 끝나서 새로 직장을 찾아야 하던 차에 수고할 필요도 없어 감사하다... 고 하기엔 딸린 식구도 있는 나에게 너무 힘든 짐이다.
하나님은 벤쿠버에서부터 철저하게 재정을 가지고 훈련을 시키시는데, 나에게 아무런 노력을 할 수 없게 나의 열심을 차단하시고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를 보신다.
이번에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고시원을 섬기면서 직장을 잡지 못하게 하셨다.
나의 주 경력은 이미 끊겨서 세상 관점으로 따지면 이도 저도 제대로 경력 증명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나에게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고 있는다고 해서 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쩌렁쩌렁 분명하게 들려지는 것 또한 아니었기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있으라고 하는 아내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가 참 어려웠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만일 하나님이 부처나 알라 따위의 명령만 하거나 죽은 듯이 있다가 불쑥 나타나는 따위의 신적인 퍼포먼스를 즐겨하는 신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환경의 원인을 찾거나 나의 어떤 잘못이나 죄된 것이 없는지 살피느라 어찌할 바를 모르며 우왕좌왕 댔겠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내가 질문을 하면 응답하시고, 내가 괴로워 할 때 위로하시고,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반드시 지적해 주신다.
문제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반응하기 위한 나의 영적 상태이다.
내가 스스로를 의지하며 하나님께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식의 믿음을 의지할 때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혀 듣지 못한다.
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도 하나님의 메시지는 나에게 들리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나의 앞선 마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방해 요소로 작용했다.
나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혹시 나를 시험하시기 위함이 아닌가 싶었다.
바로 몇 해 전,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받았던 말씀은 이사야서 60장 1절의 말씀이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빛을 발하라고 하시므로 나는 내가 무언가를 열심을 내어 해야만 하는줄 알고 사업 아이템을 준비했다. 뭔가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려면 내가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할 것 같았다.
컴퓨터를 전공한 내가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내가 갑자기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고 돈의 흐름이나 경영 관련 책을 뒤적거리는게 너무 어색했지만 일단은 이것 저것을 들여다보고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고시원 일을 본다는 것이 사실상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되는 일이 대부분이라 시간이 많이 있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면서 기도의 방향이 점차 벤쿠버에서 떠나올 때 시작을 함께 했던 S** 사역에 중심을 두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늘 큰 기도 제목 앞에서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같은 마음이 되어 S**사역과 심** 교회, C 목사님과 그 가정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른 뒤 어느날 C목사님으로부터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2. 기도의 동역자
C목사님이 교회 성도들과 함께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먼 곳에서부터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우리의 다음 행보가 벤쿠버가 될 지 모른다는 기대와 설렘 때문에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많이 위축되기도 했다. 나는 이루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벤쿠버를 떠날 때 기도로 올려드린 것을 정확히 기억하는데, 다시 돌아올 때는 공급하는 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아무 것도 없는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공급하는 자가 될 수는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동안 숱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고 놀라운 일로 역사하시는 기적을 체험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닥치는 상황은 앞이 보이지 않는 관계로 늘 새로운 두려움이 임한다.
나는 막연히 벤쿠버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 했다.
3. 시련 가운데 소망을.
그런 가운데 직장을 그만 두고있던 우리 가족에게 고시원 수입의 일부로 생계를 보태주시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매달 주시던 재정을 그만 두시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셨다.
일방적인 통보에 관해서는 나의 첫번째 간증을 통해 기술한 대로 벤쿠버에 있을 때도 경험했던 일이었고, 나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엄청난 은혜의 시간을 주실 줄로 대번에 믿.. 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믿음이 나에게 없는 관계로 또다시 처절한 좌절감과 상실감을 맛보며 치열한 영적 싸움에 돌입했다.
한가지 내가 붙잡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이 또한 알고 계시며,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전능자이시자 나를 사랑하사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는 분이 나의 의지 되어주신다는 변함없는 진리이다.
여호와를 의뢰하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니라. -예레미야 17:7-8
4. 부르심.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부르시면 무조건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는 줄 알았던 것이었다.
회심한 이전에도 그랬지만 날카롭게 비판하는 기질을 가진 내가 스스로 목회자가 된다면 너무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높은 잣대로 스스로를 정죄할 것이기에 나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부르심 만은 외면하거나 제발 거두시길 기도했다.
그런데 막상 하나님의 부르심은 너무도 부드럽고 너무나 거절할 수 없는 초대였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물음이셨다.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그 물음, 끝내는 성령으로 온전히 변화된 베드로를 있게 한 그 물음이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런데 나에게 부르심은 "내 양떼를 치라!"는 없었다.
계속 다시 되물어도 "내 양떼를 치라!"는 대목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보여주신 것이 Non-profit management (비영리 경영) 이라는 MBA 코스였는데, 비즈니스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내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보이시겠다는 마음을 비추셨다.
비추셨다는 표현을 쓴 것은 확실히 말씀하신 것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기도하면서 같은 마음을 계속 받았지만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확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일이 좀 지난 후에서야 아내와 C목사님, 그리고 내가 기도하며 받은 마음을 나눌 때 같은 마음을 확인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 과정(비영리 경영) 으로 학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기도의 동역자가 중요한 이유는 기도의 응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포함된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예수님도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성령이 하나되게 한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 중보자들과 하나님의 길을 걷는 걸음을 기도로 확신받으며 걷는 것 아니겠는가.
5. 석사 과정 지원
C목사님은 마침 S** 사역을 좀 더 활성화 하기 위해 동역자가 필요했는데 가장 필요한 매니저 역할을 할 동역자를 어디서 구할까를 놓고 기도를 하시는 중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때만 해도 그 동역자를 빨리 구할 수 있도록 중보하는 중이었고 학업을 진행하는 마음을 받았을 때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 대학 졸업한 지 10년도 더 됐는데 영어도 부족하고 재정도 부족하고 또 내 분야도 아닌 공부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못 들은 척 하기도 여러 번 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공부를 하라고 하셨지만 '언제' 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신 점을 이용해서 최대한 핑계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영어가 안되니까 영어 점수를 얻기 전에는 학교에 지원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런데 Trinity Western University에는 pre-master program이라는게 있는데, 이게 석사 과정 지원시 필요한 학내 영어 코스를 함께 시작하며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 영어 점수가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만 알고 몰래 묻어두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성령이 찔러대는 거짓말이라 하는 수 없이 지원을 했다.
지원을 하려고 보니 이것 저것 제출할 서류가 많은데 그 중 가장 준비가 어려웠던 서류가 추천서였다.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 상사의 추천서를 얻을 수 없었고,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 되어 교수 추천도 얻기 어려웠다.
내 주변엔 목사님들 뿐이라 목사님 두 분에게 추천서를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지원 요강에는 Academic reference와 Professional reference 두가지 추천서를 요구했지만 알아본 바 나를 가장 잘 아는 주변 지인의 추천서도 괜찮다고 한다.
어쨌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서류를 제출했는데 덜컥 합격 통지가 날라왔다.
6. 집을 팔다.
하나님으로부터 밴쿠버로 돌아갈 마음을 받았던 때는 아버지로부터 재정을 끊겠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였다.
이제 재정 공급을 부모님으로 부터가 아닌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받게 하실 거라는 소망을 가지고 소유하고 있던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얼마 있다가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오더니 덜컥 집을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때는 학교 원서도 준비하고 있지 않은 때라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집이 그냥 팔려버리면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는건 아닌가 싶어서 속으로 얼마나 집이 안팔리길 기도했는지 모른다.
덜컥 집이 팔리게 생겼으니 어쩐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계약 시점을 하루 늦추고 다음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물론 소유자는 내 이름으로 된 집이지만 처음 전세자금부터 이래 저래 부모님이 도움을 주신 것이 있어서 부모님 입장에서는 집을 마음대로 팔고 통보를 하는 것이 괘씸하고 화가 날 만한 일이었나보다. 아버지는 오히려 덤덤하셨지만 엄마는 크게 화를 내셨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사실 아내는 기도 중에 그 날 집 매매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거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다고 한다.
엄마가 크게 화를 낸 이후에 내가 혼란스러워 하다가 부동산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계약이 파기됐다는 전화였다.
그 전화를 받고 멍하니 있다가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하나님께 그날 새벽에 들은 메시지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파기될 계약이 성사될 것처럼 인도하셨을까?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온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능자 창조주로 인정하는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세상이 말하는 '우연'을 하나님이 계획하신 '계획'으로 믿는 믿음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우연'이란 없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에 의한 계획이 있을 뿐.
계약이 파기된 이유는 아마도 계속 부모님께 알리기를 꺼려했던 내 마음을 끄집어내어 부모님 앞에 당당히 서게 하시려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날 저녁 부모님을 만나면서 그제서야 담대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말씀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7. 집을 구하다.
석사 과정을 지원하고 합격을 했지만 학비를 낼 돈이 없을 무렵 집이 팔렸다.
계약상 2개월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고 계약금으로 학비를 송금했다.
이제 정말 집이 팔렸다.
함께 모시고 살던 장모님이 의정부 덕정으로 아파트를 얻어 가셨고 우리는 출국하기 전까지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 걱정인 것은 밴쿠버에 가서 살 집을 얻는 것이었다.
2014년까지 지내던 밴쿠버는 그 때도 부동산 가격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동네로 이름을 날렸던 터였는데 밴쿠버 지인들의 소식에 의하면 중국인들과 홍콩인들의 범람으로 집값이 폭등했다고 한다.
우리가 있을 때만 해도 한 달 렌트비가 그래도 1300달러 선에서 어느 정도 되는 집을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2000달러를 넘게 지불하지 않고는 집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한달에 2000불이 넘는 렌트비를 감당할 자신도 없고 그냥 두렵기만 했다.
밴조선 등의 온라인 부동산 사이트를 통해 여러 군데를 보았지만 정말 천정부지로 솟은 집값으로 인해 점점 가슴이 먹먹해 지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 섬기는 교회로 어떤 중년의 자매님이 새로 오셨는데 새신자 부를 섬기시던 자매님이 굳이 우리 부부를 보이며 밴쿠버에서 오셨다고 소개를 시켜주시는 것이었다. 그 분이 밴쿠버에서 오셨다는 이유였지만 그거 말고는 별 관련도 없고 공감대도 찾기 힘든 세대여서 그냥 인사만 하고 지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리스도인에게 '우연'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떤 인도하심인지 물으며 기도를 했다.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은 다 아시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위해 설레발을 치며 밴쿠버에서 온 분이니까 우리에게 어떤 이로운 것을 준비해 주시지는 않을까 하는 육신으로부터 오는 모든 주책맞은 생각들을 죽이기로 결단했다.
"하나님, 밴쿠버에서 오신 자매님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하나님이 온전히 감당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그저 인사나 하고 지낼 뿐, 저 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물을 지언정 저희가 저 분에게 다가가지는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라면 하나님이 일하셔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증거하게 해주세요. "
어느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와서 볼 일이 있어 큰 길가로 지나가고 있는데 그 자매님이 그냥 길목에 서있다가 우리를 보고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밴쿠버에서 온 것 말고는 별로 같이 이야기할 공감대가 없을텐데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고 갑자기 안부를 물을 정도로 가까운 적도 없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더니 아내에게 연락처를 묻고 다음에 차나 한잔 하자고 하신다.
신기한 일도 다 있다며 우리는 자매님과 헤어진 후 더 기도했다. 그 분이 먼저 묻고 다가오셨어도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앞서 말하지 않을테니 하나님이 알아서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자매님은 그 뒤 종종 아내와 메신저를 통해 이런 저런 안부를 주고 받곤 했지만 이렇다할 깊은 대화는 한 적이 없었다.
비자를 신청하고 티켓팅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비자 신청이 늦어져서 학교 시작 날짜인 9월 4일 전에 티켓팅을 하기가 선뜻 내키지 않았다. 혹시 비자가 누락되면 어쩌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도 9월 초에는 어찌됐든 가겠지 하는 믿음으로 교회에는 마지막 예배드릴 날짜를 정하여 알려드렸다.
이사를 8월 14일에 이미 완료해서 그 주 돌아오는 주일이 마지막 예배 날짜였다.
양주에서 공릉동까지 아이들 둘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가야한다.
전날 토요일 밤, 이런 저런 생각에 불현듯 예전 고등학교 때 그렇게 신앙 좋던 교회 친구들 페북이 괜히 찾아보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다들 외국으로 어디로 진출해서 승승장구 하고 주식회사 CEO가 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타임라인에 하나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잘 살고 있는 것인지, 그들이 잘 살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지금의 내 형편에 주눅이 들고 지금 뭐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기도할 때.
우리가 PLP에서 가장 잘 배운 것 중 하나는 마음이 어지럽고 생각이 난무할 때 꼭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 순간 응답하시는데, 너의 불신을 내일 확신으로 바꾸어주겠다고 하셨다.
다음날 주일이 되어 태능 침례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청년부 청년들의 환송식이 준비된 식당으로 갔다.
청년들에게는 어제 내가 어떤 부끄러운 생각들을 했는지는 전혀 알 리가 없는 순진한 청년들에게는 그동안 내가 청년들에게 했던 말,
"너희가 보지 못했다던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간다!" 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걸 다 보고 계셨겠지.. 으.. 부끄럽다.
청년들의 푸짐한 선물들과 아쉬워하는 인사를 뒤로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커피숍에 들어가 잠시 쉬었다가 가기로 했다.
이전에 밴쿠버 자매님이 꼭 만나서 차한잔 하자고 하신 말이 생각나 메시지를 보내 혹시 시간 되시면 차한잔 하시겠는지 물었다.
별 기대 없이 바로 부모님 댁으로 가려고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긴 메시지에 자매님의 대답이 온 것은 그로부터 몇 분 안되서였다.
그리고 얼마 안있다가 우리가 머물러 있는 커피숍으로 자매님이 나오셨다.
제대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우리도 처음이라 서먹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라 말을 아끼다가 누구나 우리를 보면 먼저 물어보는 부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밴쿠버에서 왜 돌아왔고 왜 또 다시 가게 되었나요?"
세상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다지 해줄 말이 없기 때문에 비자를 핑계대거나 직장이나 일로 둘러대곤 하지만 크리스천을 만났을 때는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나눈다.
그 사람이 진짜 크리스천이라면 우리의 간증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음으로 들으며 하나님께 함께 영광을 올리며 은혜를 받지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리의 간증에 아무런 반응이 없거나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반응으로 대답한다. 그런 반응에 대해 우리는 그다지 상처받지 않는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저 기도할 뿐.
그런데 이 분의 반응이 너무 은혜로 반응을 하셔서 우리의 간증을 더 깊고 자세히 나누게 되었다.
우리의 간증을 한참 듣고 있던 자매님이 갑자기 말을 머뭇거리시더니,
"우리가.. 혹시.. 밴쿠버 가셔서 지낼 곳을 아직 못찾으셨다면... 저희 집을 렌트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누추하고 보잘것 없는 집이긴 한데,.... 지금 시세로 렌트를 놓으면 2300 정도 받으면 된다고 하던데,.... 모기지와 유틸비용 1350불에 형제님 가족에게 렌트를 하고 싶은데......"
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얘기하지도 않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우리가 기도한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그것도 아이들과 가정예배때 기도한 기도제목 그대로, 그렇게..... 부인할 수 없도록,
하나님은 믿음 없는 나에게 확신 가운데 믿음 있는 사람이 되도록 그 순간을 계획하신 것이다!!
순간 얼어붙은 듯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던 우리 부부는 왈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며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께 다시 영광을 돌리자 그 분도 함께 은혜를 받고 펑펑 우시느라 졸지에 대낮에 커피숍에서 세 사람이 커피마시며 얘기하다가 엉엉 우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말았다.
진정이 된 다음에 하나님이 어제 나에게 하신 말씀을 간증했더니, 아내가 놀라며,
"하나님이 나에게 남편의 마음이 혼란스럽고 나를 보지 않고 있다. 내일 남편을 돌려놓겠다"
라고 어제 내가 쓸데없는 페북을 볼 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다는 것이다!
8. 애굽에서 인도하심 같이.
남들에게 신세지거나 받는 것을 꺼리던 아내가 어느 날 첫째 딸 하은이의 유치원때 친구 엄마로부터 돈봉투와 편지를 받았다고 감격해 했다.
교회도 안다니는 믿지 않는 엄마인데 아내를 너무 좋아하고 아쉬워 하며 여행 갈 때 남겨둔 캐나다 달러를 100달러나 봉투에 넣어주더라는 얘기다.
이 때를 시작으로 여기저기로부터 우리가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금일봉을 부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모님께도 기대하지 않았던 목돈을 받으며 아내와 나는 어찌된 일인가 싶어 감사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 묻게 되었다.
하나님은 조용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실 때 애굽인들에게 금붙이를 받아 빈손으로 나가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나게 하셨다.
할렐루야!
9. 비자와 티켓팅
그렇게 재정이 채워지고 집이 구해지고 비자가 나왔다.
9월 4일 이전에 출국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며 티켓팅을 준비하는데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다.
일주일만 늦춰서 출국을 하면 비행기 표값이 100만원은 다운되는 상황이다.
늘 하던 대로 기도를 했고, 학교에서 응답이 오기를, 18일 이전에만 등록을 하면 괜찮다고 한다.
할렐루야!
9월 8일로 티켓팅을 했다.
10. 계속되는 간증
한 치 앞도 미리 결정된 것 없이 우리의 계획을 다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하심 안에서 한가지 한가지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간증하길 원합니다.
티켓팅이 완료되어 이제 비로소 밴쿠버 출국이 확정되었기에 간증을 남깁니다.
이제 밴쿠버에서부터 시작될 새로운 간증으로 하나님을 증거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만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의 열심이 90이 되면 하나님의 은혜는 10입니다.
나의 기도가 100이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100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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