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기억하는 고등부때 목사님

중3의 질풍노도 시기를 거치며 나는 한 교회에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계기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기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매주 일요일 빠지지 않고 그 교회를 출석했다.
그 교회에는 당시 우리 또래 사이에서 인싸라고 불리던 이들이 다수 출석하고 있었는데, 왠지 그 교회를 다니면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될 것만 같은 기대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인기많은 여학생들과 잘 나간다는 남학생들이 잔뜩 있어서 기죽지 않으려면 옷빨이 잘 받아야 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다지 패션에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시장에서 5000원이면 살 수 있는 청바지를 십만원이나 주고 사야한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바람에 나는 늘 시장표 옷을 입고 다녔다. 그냥 아무 메이커도 없는 옷이면 그나마 낫겠지만 시중에는 그냥 옷이라도 꼭 유명 메이커를 엇비슷하게 베낀 디자인의 옷들밖에 없었고, 그런 옷들은 또래 사이에서 엄청나게 놀림감이 되곤 했다.
그나마 가장 진퉁같이 생긴 짝퉁을 찾아 구하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다행히 나는 그런 루트를 친한 친구들을 통해 여럿 알고 있어서 진퉁같은 짝퉁으로 잘 맞춰 입고 또래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짝퉁인걸 들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기억은 또렷하다.
인싸들의 고등부이다 보니 목사님도 인싸 출신인듯 했다.
잘 나가는 형, 누나들이 목사님 목사님 하며 따라다니고, 이에 질새라 또래들도 줄줄이 목사님을 따라다녔다.
난 왠지 목사님이 멀게 느껴졌다. 타이틀만 목사일 뿐, 내게는 일진 패거리 두목 정도로 여겨졌을 뿐이다. 확실히 실망했던 건, 그 목사님은 내 이름조차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3년을 개근했는데. 수련회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심지어 없는 용돈에 십일조까지 했다. 이름이 주보에 올라가서 좋아하던 그 여자애에게 혹시라도 잘 보일까 싶었던 건데...
수련회 때 일이다.
찬양 집회를 인도하시는 전도사님이 새로 오셨는데 기타도 잘 치시고 기도회를 엄청 잘 인도해 주셨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강대상에서 목사님이 전도사님을 정식으로 소개해 주셨는데, 같은 신학 대학 출신 동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스갯 소리로 하신답시고 하셨겠지만, 그 전도사님을 두고, 자기가 먼저 목사를 '달았다'고 하시면서 장난스럽게 웃으셨다. 그 때 전도사님의 표정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목사님은 왜 은혜 다 받고 한창 눈빛을 초롱초롱 새우고 있는 청소년들 앞에서 그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셨을까.
모를 일이지만 하나님은 아시겠지 생각하면 내가 목사님이었다면 너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목회자는 참 보기 드물다. 하나님과 친밀하다고 내새우는 목회자들은 많지만 정작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목회자가 보기 어려운 것은, 목회자가 된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목회자가 대부분이라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