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remi 2020. 5. 4. 07:48

우리가 알고 있는 경건함이란 단순히 엄숙하고 장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경건 - piety - the quality of being religious or reverent; a belief which is accepted with unthinking conventional reverence; godly - devoutly religious; pious

 

경건함은 신앙의 진지함, 신실함과 더 깊은 연관이 있다. 신실함은 정직함, 즉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을 말한다. 

신앙적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을 말한다면, 하나님은 심령을 감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앞에서 정직하든 정직하지 않든 숨길 수는 없다. 다만 죄성을 가진 본성이 이를 숨기려고 하는 경향성을 띄게 되는데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는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때로는 남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으로는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다윗이 언약궤를 되찾아올 때, 그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며 하체가 드러나는 것도 개의치 않았던 행동을 생각해 보자. (사무엘하 6장)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우리는 경건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떠올린다.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경건했던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무의식중에 알고 있는 '경건'의 의미대로 판단하건데 체통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불경을 저지른 것인가. 

성경에는, 사울의 딸이며 다윗왕의 아내였던 미갈이 다윗왕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체통'을 지키지 않았다고 책망했던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다윗은 이에 대해 "주님을 찬양하는 일에 이보다 더 낮아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로 화답한다.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인데, 그의 이러한 태도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다시 생각해보자. 경건이란 무엇인가. 

 

엄숙하고 고귀하게 얼굴에 웃음끼를 절대 띄지 않는 근엄한 표정으로, 마치 즐거워하기라도 하면 크게 책망을 받아 마땅할 것이라는 냥, 하나님을 무슨 조금만 체통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자들을 당장에 풀무불에 던져버릴 것처럼 위엄을 떠는 진시황제같은 따위의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하나님, 보잘것 없는 내게 아버지라 불리우길 원하시는, 그리고 실제 나의 존재를 있게 하신 아버지이자, 선하시고 오래 참으시며, 그 영광의 광채가 온 우주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신, 그 분 앞에, 

 

마치 5살짜리 나의 딸이 아빠가 무엇을 하고 있든 아랑곳 하지 않고 어깨 위에 올라타고 머리를 잡아당기며 즐거워하는 것이 오늘 하루 중에 내가 가장 즐겁고 기뻐했던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지금, 

 

그 분이 나의 어떤 행동을 기뻐하실까를 생각하면, 

 

경건이란,

예배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예배당에서 드럼치고 기타를 치며,

그분 앞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이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시며, 교회의 목적이시고, 우리 삶의 목적이심을 나타내는 것이야 말로, 

그분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는 경건의 모습이 아닐까. 

 

An artistic depiction of the parable of the Pharisee and the tax collector. (Credit: Stock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