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야기/궁금해할 이야기

[나의 간증]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

piremi 2018. 5. 5. 14:00

 영적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교회 안에서 조차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 오해하고 잘못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예수를 모르지만 안다고 착각하는 수많은 교인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닌, 자기 마음으로 지어낸 허상의 이름 '예수'를 믿고 아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저 또한 예수를 안다고 착각했던 사람 중의 한 명 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신앙적 배경부터 예수를 안다고 착각하며 살았다가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간증은 대언의 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의 영이 훼방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진짜 만난 사람들은 서로의 간증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하늘에 속한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을 만난 간증을 글로 남겨 저를 아는 사람들과 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교제할 수 있는 신뢰를 얻고, 하나님의 일을 함께 나누는 데 유익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하의 글은 편의상 존대를 생략함을 양해 바랍니다.



 

1. 신앙적 배경


 내가 태어날 무렵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하진 않으셨다. 다만 아버지가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세례교인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을 뿐이다.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게 된 것도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이었으니까 모태에서부터 신앙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니고 중학교 때까지 교회 말고는 다른 종교 영역에 들어가본 적이 없어 충분히 교회 문화에 익숙한 편이었다.

 찬송가와 어린이 찬양에 익숙했고,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울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는 제법 스스로의 의지로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기도 했고, 나름 고등부 수련회때 목이 터져라 기도도 해봤으니까 기도 흉내도 충분히 내봤던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교회를 떠났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굳이 다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수련회를 통한 특별한 체험 덕분에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분명히 있다는 것만 확실히 알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교회를 꼭 다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가나안 성도로 십년을 보냈다.



2. 출한국


 사범대를 졸업하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한 사립 고등학교의 정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결혼도 하고 직장도 안정적으로 정착을 했지만 교육계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적나라하게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 


 내 자식은 이 저질 문화, 저질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국내의 내로라 하는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 심지어 이 나라를 더욱 신뢰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 조차도 자기 자녀 만큼은 외국의 선진 교육 시스템에 맡기기를 원하는 것은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국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교직 경력 5년만에 퇴사하고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떠났다. 


 결정적으로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믿음이 좋으신 장모님이 우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시고 내 앞길에 대해 큰 비전을 보셨으니 마음 놓고 떠나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와 아내의 믿음은 믿음이라고 하기에는 믿는 대상도 불분명한, 하나님을 무슨 용한 점쟁이 수준으로 알고 내 미래에 대해 점치고 좋은 점괘가 나왔으니 떠나라고 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전까지 대학 입시부터 교직을 얻기까지 이렇다할 실패를 경험해 보지 않은 나로써는 정해진 길로만 가면 당연히 아무런 근심없이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이라고 막연히 예상했었다. 게다가 용한 점쟁이같이 여기던 장모님의 좋은 점괘(?)가 더해져서 아무런 근심도 없었다. 



3. 나의 헛된 노력


 캐나다에 정착을 위해서는 우선 직업을 구하는 것이 제일 급했다. 컴퓨터 교사로 5년의 경력밖에 없던 내가 캐나다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직업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캐나다 현지의 교육 기관을 통해 적절한 교육을 받고 그 기관을 통해 노동허가증을 신청하여 일을 구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당시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이민 컨설팅 회사를 통해 소개받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기를 당한 느낌이 컸다. 캐나다 현지 교육기관이라고 해서 갔는데 한국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고, 그곳의 학생들은 모두 한국 사람이었다. 그리고 교사도 한 명에 교실에서 수업은 고사하고 매일 동영상만 틀어줬다. 

 영어수업료까지 지불했는데 카운터를 보는 아줌마가 와서 이상한 터키 발음으로 복사한 종이 몇 장 주고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2년여 기간을 마치고도 노동허가증이 나오지 않는 개인 사설 교육기관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같은 교육비를 내고 BC주의 더 훌륭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너무 분하고 원통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일단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이민 수속을 도와주는 에이전시 에릭 스미스라는 사람을 통해 필요한 절차를 계속 진행했다. 지금껏 사기당한 것이 괘씸했지만 그곳을 떠나서는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으리라는 마음으로 구직 활동을 열심히 따라갔다. 


 2009년 2월에 가서 2011년 2월까지의 교육 기간동안 원래 1년여 기간 후에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직장은 2011년이 되어서도 구해지지 않았고, 그렇게 점점 재정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 때 당시에 우리는 나름 크리스천이랍시고 주변 여러 교회들을 전전하며 주일성수만큼은 하고 있었는데, 기왕이면 영어도 좀 공부하자는 심정으로 코스털 처치라는 캐나다인 목사님이 설교하는 교회를 다녔었다. 예배 서비스는 신도들을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하면서, 설교 시간은 너무도 화려한 동영상과 엔터테인먼트가 가득한 퍼포먼스로 채워졌었다. 우리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 설교를 들으면서 시간을 떼우고 주일을 그렇게 헛되이 보냈었다. 



4. 패배의식과 좌절감


 이곳 저곳에 넣었던 이력서는 어느 덧 100건이 넘어갔지만 면접볼 기회조차 5번을 넘기지 못했고, 면접을 볼 때마다 계속 떨어졌다.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고, 남은 재정도 거의 바닥이 났다. 

 가장 두려웠던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시원을 운영하시던 부모님이 조금 여유가 있어 매달 아파트 렌트비 정도의 금액을 보내주셨다. 언제까지라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고 이제 곧 취업을 할 수 있을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또다시 1년여가 지나자 아버지는 앞으로 보내줄 여유가 없다며 당장 다음달 부터 돈을 보내지 않을 거라고 갑작스럽게 통보하셨다. 

 

 통화를 끝내고 머리속이 멍해졌다. 

 

 부모에게 버림받는 느낌이 이런건가 싶기도 하고, 주변에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는데 그냥 나가서 구걸이라도 해야 하나 싶자 깊은 절망감과 좌절감에 나의 삶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다음 달 렌트비 낼 돈이 없는 상황일 뿐인데, 이제 앞으로 무슨 기댈 곳도 없고, 기댈 곳이 있다해도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한 패배의식 속에서 사탄의 미혹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희망은 없다. 자살해라!"



5. 절망이 소망으로


 아마도 그 순간 내가 혼자 있었다면 저질렀을 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그 때 아내가 옆에서 위로하며 말했다. 


 "엄마가 힘들고 지칠 때 찬송가 186장을 100번 부르라고 하시던데 한번 해보자."


 찬송가 186장, 새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이라는 찬송이다. 

 

 아무 희망도 없고, 붙잡을 데라고는 혹시 있을지 모를(!) 하나님 밖에 없다. 


 그 분 앞에 갑자기 튀어나가 나좀 도와주세요 하기는 너무 뻔뻔하지만 그래도 나를 외면하지는 않으실 것 같은...   

 그래.. 교회 다니면서 귀동냥으로 듣던 말들, 너는 내 아들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켜줄께, 와 같은 뻔한 위로라도 듣고 싶은 심정으로, 

 그 순간 진짜 죽고 싶었던 그 순간을 잠시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그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주소서


약하고 추해도 주께로 나가면

힘주시고 내 추함을 곧 씻어주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날 오라하심은 온전한 믿음과

또 사랑함과 평안함 다 주려함이라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큰 죄인 복받아 살 길을 얻었네

한 없이 넓고 큰 은혜 베풀어 주소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 됩니다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찬송을 두 세번 반복하여 부르다가 갑자기 목이 메여 더이상 부를 수가 없게 되었다. 

내 심령이 극도로 가난해져서 하나님 앞에 너무도 간절히 씻김을 원하는 마음의 상태가 되었나보다. 


 갑자기 어디선가 음성이 들리는데, 그 음성은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큰 음성이었다. 

그런데 그 음성은 내가 기대한 위로의 말들이 아니라 


"다 안다"


한 마디 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내 안에 있던 모든 설움과 좌절감, 모든 슬픔과 괴로움, 깊숙이 숨겨졌던 상처까지 한꺼번에 떠올라 이 모든 것을 진짜로 다 아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 어떤 위로의 말들보다 지금 내 영혼이 가장 위로받을 수 있는 한마디 말을 건내신 그 분은, 

그동안 내가 그렇게 왔다갔다 하며 들었지만 귓등으로 듣고,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셨지만, 눼눼 하며 속으로 비웃던, 

있다면 나와보라며 때로는 업수이 여기고, 

내 잘못으로 무슨 일이 잘 안될 때마다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말로 수없이 원망하며 삿대질 하는, 

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인 나를, 


"다 안다'고 하시며, 

 내 안의 슬픔, 내 안의 고통, 내 안의 좌절, 내 안의 외로움과 모든 아픔, 억울함까지, 다 안으시고 위로하시는, 


 그 분이 바로, 

장모님이 매일 볼 때마다 귀찮게 말씀하셨던, "정서방, 하나님은 살아계시네" 하시던, 

 

 그 살아계신 하나님,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셨다. 


그 분을 만나고 태어나서 그렇게까지 울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펑펑 울었다. 정말 원없이 펑펑 울고 또 울었는데,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죽고 싶다고 생각하던 내가, 잠시 위로받고 죽음을 유보했을 뿐인 내가, 갑자기 찬송을 부르다가 펑펑 울더니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미친 놈 같다. 아 드디어는 미쳤구나 라고 생각하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6. 거듭난 이후


 예전에 교회를 띄엄띄엄 다니면서 나름 신실한 신앙인이라고 착각하며 살 때 가끔 들던 생각은 하나님이 기도를 과연 응답하시는가, 우연히 해결된 문제를 두고 하나님이 하셨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입밖에 낸 적은 없었고, 내 믿음을 다른 사람이 의심하게 할 만한 어떤 것도 드러낸 적은 없다. 하지만 명백히 나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사람 앞에 증명하기 원하는 외식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나를 찾아와 주시고, 다 안다고 말씀하신 하나님 앞에 더이상 가식적인 모습으로 서있을 수 없었던 나는 철저히 회개했다. 


 아니, 회개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은 나를 더이상 보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더러웠고, 하나님은 너무 거룩했다. 


 내 이성과 지식은 절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했지만, 이미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해 버린 내 자아는 이제 더이상 그 무엇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존재 자체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진짜 의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고 있었다. 


 다음 달 렌트비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안중에도 없어져 버렸다. 원래는 기도를 조금 하다가 다음 달 렌트비가 없다고 하나님이 진짜 계시다면 그것부터 해결해 달라고 기도할 참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그따위 것, 아무래도 좋았다. 하나님이 나를 다 안다고 하시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웃기는 일은 그다음부터 계속 됐다. 

 갑자기 처남댁에서 돈을 송금해 줬다. 무슨 부탁을 한 것도 아니고, 원래 계획한 것도 없는데 그냥 그렇게 다음 달 렌트비가 해결됐다. 


 그 다음은 아버지가 다시 송금을 해 주셨다. 부탁하지도 않고, 우리 사정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딱 렌트비와 생활비 조금 될 정도로 송금을 해 주셨다. 


 구하지 않아도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이 해결되고 있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 


 그래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기도할 지 몰라 그냥 무작정 기도했다. 


 가장 먼저 섬길 곳을 찾으라고 하셨다. 

 분명히, '다닐 곳' 이 아니라 '섬길 곳' 이라고 하셨다. 


 교회의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신 때가 이 때부터 였다.



 7. PLP 교회


 근처에 있는 한인 교회를 찾아봤다. 갈릴리 교회라는 큰 교회가 있고, 다윗의 장막이라는 조금 규모는 작은 교회가 있었다. 

 그리고 작은 사무실을 빌려서 예배하는 PLP라는 교회가 있었다. 


 작은 교회에서 섬길 기회가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우선은 가장 작은 PLP라는 교회를 찾았다. 

 주일부터 찾아가기가 조금 민망해서 금요 기도회라는 때에 찾아갔다. 


 작은 사무실을 빌려서 예배 처소를 만들었는데, 좌석도 접는 의자를 20여개 줄지어 늘여놓은 것 뿐이다. 30평도 될까한 좁은 공간에 전자 피아노와 드럼까지 있었다. 그날은 찬양 예배였는데, 그래도 나름 유학생 선교를 위하는 교회라 금요일 기도모임 만은 영어로 영어 찬양을 한다. 


 앞에 인도하는 자매가 있는데, 중학교 2학년때부터 기타를 쳐서 제법 고급지게 연주할 줄 아는 내가 보기에 형편없는 솜씨로 스트로크를 하며 찬양을 하는데, 영어 발음도 형편없다. 중간 중간 기도를 하는데, 되지도 않는 콩클리시로 말을 하는데 영어도 되게 못한다. 


 그런데, 그런 걸 하나 하나 꼬투리 잡아가며 보고 있는 내 앞에 있는 그 보잘것 없는 자매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직하고, 순수하며,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 앞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그런 고백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하염없이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나는 너무나 무너지고, 너무도 부끄러운 나머지, 하나님 앞에 또한번 크게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 임재하시는 그 곳에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계신 이 예배를, 내 더러운 마음으로 더럽히고 있다니...


 그 마음에 내 스스로가 너무도 부끄럽고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그 자매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찬양 내내 펑펑 울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곳이라고 말씀하셨다. 니가 섬겨야 할 곳이 니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그곳이라고. 


 예배가 끝나고 인도하던 자매가 너무나도 해맑게 

 "Glorify him!" 

 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알게 된 건, 그 자매가 부산 출신의 태어나서 한번도 교회를 가본 적 없고 일가친척 중에 믿는 사람이 전무한 집안에, 불과 몇 년 전에 밴쿠버에 어학연수 왔다가 복음 듣고 뒤집어져 지금까지 예수의 제자로 PLP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금요 기도회에서 은혜를 듬뿍 받고 주일 예배가 너무나 기대됐다. 


 토요일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주일이 되었다. 


 반가운 한국말 찬양으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 작은 교회에 주일학교도 있다. 협력 교회(?) 목사님인 제프 목사님(나중에 따로 소개하고 싶은 목사님이다. )의 두 자녀 아이들과 PLP 유일한 집사님 가정의 초등학생 자녀가 데이케어 공부를 하고 있는 진선 자매의 헌신으로 주일학교에 참여한다. 


뜨거운 예배, 은혜가 부어지는 그런 예배를 기대했지만 솔직히 예배는 평범했다. 찬양이 끝나고 전도사님 설교하시고 헌금송, 마무리 찬양까지.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듯 보이는 예배. 


그런데, 예배가 끝났는데, 아무도 집에 갈 생각을 안한다. 

보통은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또는 목사님 축도가 끝남과 동시에, 혹은 모두가 눈감고 있을 조금은 빠져나가기 덜 민망한 시간에 반 이상 자리를 떠나는 여느 교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아. 뭔가 맛있는 식사가 준비되는가 싶었는데 고작 고추장 비빔밥이다. 아. 그런데 엄청나게 맛있는 비빔밥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도 엄청나게 한국음식이 그리울 유학생 들에게는 더욱 더. 


아. 그렇다면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분위기인가 보다 생각하며 자리를 떠날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전도사님이 리더모임을 하신다고 한다. 

이 교회는 예배후 늘 리더모임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욱 더 자리를 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이 교회는 리더가 좀 많...  아니 전부 다 리더인가 보다. 여전히 아무도 집에 안간다. 


우리 부부에게도 자리에 앉으라고 권해서 얼떨결에 앉았다. 리더모임이니까 일종의 회의석상에 외부인(?)과도 같은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이 앉아있는, 그러니까 핵심 참모 본부에 오늘 갓 들어온 신임 요원이 장성들과 함께 앉아있는 뭐 그런 느낌..  좀 과장은 했지만 그런 긴장감을 잠깐 느꼈다. 


 회의는 전도사님의 주재로 어떤 안건을 가지고 교회 운영 회의를 할지가 또 은근 궁금해 지기도 할 찰나, 전도사님의 인도로 기도(!)가 시작되었다. 기도 제목은 열방의 구원, 유학생들의 구원, 밴쿠버 도시의 복음화, 뭐 이런 종류(?)의 제목들이다. 무슨 교회가 재정 기도, 학업 기도, 부흥 기도 뭐 이런 제목은 하나도 없이, 하나 안하나 별반 티도 안날 기도제목을 붙들고 스무명 남짓이나 되는 무리들이 기도까지 하나 싶었다. 


 그래도 교회 밥 먹은지 십수년은 넘은지라 같이 앉아서 우물우물 기도를 하는 시늉은 했던 것 같다. 


 한참만에 기도 제목을 다 기도해서, 이제 회의를 시작하려나보다 싶었다. 벌써 시간은 40여분이 지났다. 무슨 회의 전 기도가 이렇게 기냐..


 그런데 마지막 마무리로 모두 돌아가며 자신의 기도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하신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도를 하라니, 신앙적 밑천이 다 드러나게 생겼다. 장로님들이 설교 전에 하던 아주 길~고 장황하고 온갖 교회 용어(?)들과 성경에 나올 법한(성경을 안읽어봐서 잘 모르지만 왠지 성경에 나오면 어울릴 법한) 표현들을 써가며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싶은 어두운 부담감이 몰려왔다. 


 이런 생각들과 내 차례에 무슨 기도를 할지, 오늘 기도한 내용들을 되새기며 머리가 복잡해 져서 누가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첫번째 자매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

 (?)

 ..............................

(???)

아버지.........  흑흑 ㅠㅠ 

(????!!!!!!!!!)


어? 희안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자매는 그냥 '아버지' 한 마디하고 흐느끼며 울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도 같이 운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나도 같이 울고 있었다. 


뭐지? 이 희안한 경험은?


아니, 뭔 기도를 내용도 없이 하는데, 가슴이 왜 이렇게 뻥 뚫린 것 같이 기쁨이 차오르고, 막 감사와 민망한 손발 오그라드는 말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지? 그리고 난 또 왜 울지? 


 주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져주시고 이 사람들의 작은 부르짖음을 귀기울이고 계신다는 것을 그 때 너무도 강렬하게 체험했다.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던 나는 그 이후로 그냥 미친 사람 같았다. 

 그 자매 이후로도 비슷한 양상은 계속 되었고, 내 차례에서 나는 내가 어떻게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그렇게 잘못한게 많은건지 연신 펑펑 울어대며 예수님을 불러댔다. 


 그렇게 성령의 역사가 폭풍과 같이(적어도 나에게는 첫경험이 그렇게 느껴졌다.) 지난 후, 전도사님의 마무리 기도가 있고(마무리 기도할 때도 펑펑 울었다.) 모두 마친 후에는 다 같이 휴지를 찾아 코를 풀어대느라 정신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그리고 다들 서로를 바라보며 꼭 미친 사람들 마냥 웃고 서로를 안아주었다. 


 그게 소위 말하는 PLP의 '리더모임' 이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친 다음에서야 하나 둘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 이후에도 대부분은 남아서 피아노, 기타, 드럼을 치며 찬양하기 바빴다. 얼굴은 천사마냥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한 표정들을 하고. 


이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있다가 여기 모두 모여서 이러고 있는지 궁금했다. 

기도의 첫스타트를 끊었던 자매한테 교회 다닌지 얼마나 됐냐고 물어봤다. 

3개월 됐다고 했다. 

그 전에는 교회 문턱도 안가보고 일가 중에 믿는 자도 전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몇 명에게, 특히 기도를 아주 대중없게 하는데, 내가 아주 ㅂㅅ같이 펑펑 울어대게 만들었던 자매들에게 물었는데, 대부분이 신앙적 배경도 없고, 한국에서 교회 문턱도 안가본 애들이었고, 한 자매만 모태신앙에 고신교단 교회생활을 하다가 여기 와서야 하나님을 제대로 만난 친구였다. 


전도사님이 그러셨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라고. 

사람들은 모두들 익숙한 듯 듣고 있었고, 전도사님은 "생각이 많아지면 기도해라!"는 말을 엄청 자주 하셨다. 

그리고 자기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다는 말을 진짜 너무 오그라들게 자주 자주 아주 잊을만하면 자꾸만 자꾸만 하셨다. 희안하게도 그렇게 자꾸 듣는데 질리기는 커녕, 다들 그런 전도사님을 따라가는 것 같았다. 결국은 우리 부부도 그렇게 됐지만. 


PLP의 간증과 스토리를 글로 엮자면 엄청난 분량이 될 것 같아 따로 포스팅할 공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8. 계속 진행중인 행전


그렇게 PLP와 5년의 시간을 보내며 우리 부부는 가정 교회로 집을 오픈하고 PLP교회의 예배를 섬기기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도우심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2014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한국으로 귀국하여 직장을 구하고, 교직에 복귀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신 계획하심을 더 깊이 체험하며 다음의 스텝을 위해 기도로 준비 중에 있다. 


 이 뒤의 간증 또한 계속하여 포스팅하려고 한다. 

 다 지난 다음의 간증도 중요하지만 현재 진행형인 간증도 귀한 은혜가 임할 줄로 믿는다.